첩첩산중 Across The Universe

疊疊山中.

홍상수의 영화 중 <첩첩산중>이란 작품이 있다. 이 영화의 첫 씬에 아파트가 등장한다. 단지 그냥 아파트. 영화를 끌고 가는 배경이 아파트인 게 아니라, 그냥 아파트를 보여준다. 몇 초간 정지된 화면으로 아파트가 나왔던 것 같다. 그 다음이 모텔 골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후에 씨네리에서 영화 제목인 <첩첩산중>의 '疊疊'이 아파트의 형상을 하고 있어 제목을 그리 정했다는 후일담을 봤던 것 같다.

 

겹칠 첩(疊). 생김샘도 비슷하지만 뜻도 아파트와 비슷하다. 커다란 하나의 시멘트 구조물 안에 수십, 수백 호가 겹쳐 있는 곳. 딱딱한 벽 하나를 두고 타인과 내가 분리되는 곳. 우리 집이 아파트에 처음 살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계속 연립이나 주택에 살다가 처음 접하게 된 아파트. 5층짜리 단층 아파트였다. 뭔가 처음 이사를 가고 나서 되게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로 이사 간다기에 좋아했다가 5층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이게 뭐야!” 했던 기억이... 그 이후부터 우리 집의 아파트 삶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아파트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아파트에 사는 게 큰 호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반 친구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곳곳이 아파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만 해도 아파트 천국이다. 베란다를 열면 벽산, SK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우리 아파트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e편한세상, 힐스테이트 단지가 있다. 단지 별로 구획되어 있지만 가히 레고마을 같을 정도다.

 

뉴타운 바람으로 도심에 아파트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그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또한 진정 서민을 위한 아파트가 아니기에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현재, 아파트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매매가 잘 되지 않고 있고, 뉴타운 공사 진행 중이던 곳도 중단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파트 인기는 사그라들고 있다. 한옥이나 타운하우스 같은 식의 주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진짜 주거용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본인 소유의 집을 얻기란 아파트나 주택이나 어려운 일일 뿐이다. 집을 구하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첩첩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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