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따띠(이하 윌로씨)는 자신의 영화<나의 삼촌>에 출연했던 개들을, 데리고 왔던 동물수용소로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윌로씨가 직접 광고를 내서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단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 준 '배우'에게 보답함과 동시에 누군가의 출신이 어떻든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픈 어여쁜 마음을 행동으로 실현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윌로씨의 사물을 대하는 자세는 곧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세로 가 닿는다. 대상에 대한 이러한 태도, 즉 섬세하면서도 대상을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는 그가 영화감독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작품 속 ‘윌로’라는 배우로서 성공하게 만들었던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윌로씨의 영화가 따뜻한 건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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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 영화감독 지망생이 몇 있다. 그 중 한 명이 올 초에 만들어 두었던 작품으로 모 영화제에 출품하여 본선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물론 이후의 수상은 못 했지만 수십 편의 작품 중에서 뽑혀 스크린에 걸리는 호사를 누린 것만 해도 대단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작품의 결과에 있지 않다. 그의 영화에는 동물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다른 이에게 그 동물들은 영화 다 찍고 난 후에 어떻게 됐냐 물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토끼는 겨울에 베란다에 내 놓았다가 얼어 죽었고, 개는 처음 사왔던 식용으로 판매하던 시장에 다시 3만원을 받고 내다 팔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육두문자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결과물을 얻었으니 과정에 쓰였던 것들은 이제 쓸모없어졌다는 식의 태도, 그게 사물이 됐든 생물이 됐든 모든 걸 자신의 목표를 위해 쓰고 버릴 수 있는 그런 야만. 그게 그 사람이 영화를 대하는 자세라 생각했다.
감히 자크따띠와 영화감독 지망생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출발선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좋고 나쁨을 떠나 기본적으로 일을 할 때 밑바탕에 깔리는 자세는 그게 거장의 그것이든 이제 시작하는 풋내기의 그것이든 올바르게 정립돼야 옳다고 생각한다. 신념이나 기본적인 태도 따위의 것들은 사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에 그것대로 지켜나가기 힘들다. 때로는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때로는 ‘융통성’이라는 말로 노선을 바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씩 자신에게 틈을 허용하면서 살더라도 사실 큰 궤를 유지하는 태도는 반드시 깊고 진중한 것이어야만 한다.



덧글
편식 2011/08/23 22:58 # 답글
헐.. 거장이든 영화지망생이든 인간이라는 점에선 똑같은데 그분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지 몰라도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는 생각해 본 적 없는 모양이네요.. 아직도 자꾸 영화감독을 엔터테인먼트보다는 예술이나 인문학 하는 사람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서 그런지, 영화 하는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게 좀 충격입니다 ㅇ_ㅇ;;
BloodyPersona 2011/08/23 23:38 #
저도 왠지 영화 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러러봄(?) 같은 게 있어서 그런지, 그 지인 좀 충격이더라고요. 원래 개념 좀 없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식으로 잔인할 줄은 몰랐거든요. 듣고 충격 받았더랬죠.